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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정말로 오랜만에 블로그를 쓴다. 요즘은 현실적으로 블로그 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고 또 이제 블로그로 뭘 공유하는게 올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구글에서 어느덧 8년 넘게 일하면서 대장 운이 참 좋다고 느낀다. 지금은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 밑에 계신 메건 스미스 부사장님이나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마리오 케이로스 부사장님이나 진정 존경하는 대장들이다. 그래서 이분들에 배워온 리더십에 대해 써본다. 물론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으니 뭐가 더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1. 보스가 아닌 코치

보통 조직에서 대장은 보스의 역할을 한다. 즉 조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고 시킨 일을 검토하고 평가한다. 그래서 상사는 “지시”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구글에서 만나온 대장들은 그리 많은 지시를 하지 않는다. 지시보다는 조직원들이 각자 해야할 일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멘토링"과 “가이드"를 해준다. 그래서 보스보다는 코치같은 느낌이다. 이는 철저한 개인 성과평가가 가능한 기업문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결국 목표는 조직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고 보스의 지시보다는 멘토링을 통해서 움직일 수 있다면 조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2. 토론의 진행자 역할

많은 기업에서 보통 연말이 되면 그 다음해 전략을 위한 워크샵을 한다. 한국 기업의 전략 워크샵은 보스에서 보고하는 성격이 강하다. 즉 이렇게 하겠습니다를 이야기하고 보스의 평가를 받는다. 구글에서 경험하는 워크샵은 성경이 조금 다르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이런 워크샵을 오프사이트(offsite)라고 부른다.) 얼마전 우리팀도 부사장님과 주요 멤버들 20명 정도만 모여 내년도 전략을 협의하는 워크샵이 있었다. 여기서 대장의 주된 역할은 토론 진행자 역할이었다. 참석한 조직원들이 빡세게 서로 어떤 방향이 맞는지 토론을 하고, 때로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도 발언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주고, 토론이 너무 길어지면 다음 주제로 넘어갈 수 있게 시간 관리도 한다. 결국 최종 결정이야 대장이 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 과정이 조직원들의 보고를 통해서인지 아니면 토론을 통해서인지는 큰 차이가 있다. 빡센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은 구글이 또 많은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빠르게 혁신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3. 직접 쓰는 회의록

구글에 많은 대장들은 회의록을 직접 쓴다. 예를 들어 중요한 파트너와 미팅을 했다면 부사장님이 먼저 회의에서 협의된 내용을 정리해서 내부 관련된 사람들에게 보낸다. 밑에 사람들이 회의록을 작성에서 보스의 지시사항과 함께 보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직급에 관련 없이 회의록을 직접 쓰는 것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중요한 건이라면 회의록을 밑에 맡기지 않고 직접 쓰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4. 위기감 보다는 동기부여

상대방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는 동기부여라고 생각한다. 조직원들이 동기부여가 되서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해야할 일에 자부심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중요하고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으로 리더로서 보여줄 때 가능한 것이다. 구글에서 만나는 대장들은 여기 참 많은 신경을 쓴다. 그래서 우리가 올핸스(all hands)라고 부르는 팀전체 미팅 같은 자리를 통해 왜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의 미래가 밝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는 지금이 위기이니 우리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열심히 일해야한다를 강조하기 좋아하는 한국 기업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위기를 알고 긴장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대장들이 위기만을 외친다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직을 생각하게 만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5. 업무 외적으로는 동료

한국 조직에서 윗사람과의 관계는 공사의 구분이 많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보스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보스이고 이는 상하관계가 중요한 동양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구글에서 만나온 대장들은 공사의 구분이 분명하게 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함께 출장을 다녀도 일하는 시간이 아닌 비행을 하거나 식사하는 시간에서는 그냥 동료같은 느낌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보스가 친구처럼 편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또 이는 서로를 직급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서양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 부사장님은 업무 외적인 자리에서는 밑에 사람들을 항상 자신의 동료(colleague)라고 소개하지 팀원, 우리 직원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은 분명 배울 점이다. 
 
6. 마지막으로 의전 

마지막으로 의전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한국 기업에서 의전은 윗사람을 모시는 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 삼성에서 일하던 시절 의전 챙기느라 참 많은 시간을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의전 잘하는 사람이 일도 깔끔하게 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근데 구글과 같은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에서는 경영진들이 알아서들 하는 문화가 있다. 커피 같은걸 준비해주거나 출장을 다닐때 누가 소위 가방모찌 역할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이 역시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반영된 기업 문화이지만 의전이 지나치면 쓸데없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 막상 정말 중요한 해야할 일을 소홀히 하는 부작용이 있다. 가끔씩 국내 대기업에서 실리콘밸리로 출장을 와서 막상 미팅 결과는 잘된게 없는데 윗분들 의전이 잘 되어서 기뻐하는 실무진들을 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